The Frankfurt school, part 1: why did Anders Breivik fear them?

Peter Thompson

프랑크푸르트 학파, 1: 아네르스 브레이비크는 왜 그들을 두려워했는가?

피터 톰슨

출처: The Guardian / 2013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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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정성철 cittaa@gmail.com

The Frankfurt school united Marx and Freud to become the most influential thinkers of the 20th century left. The respectable right are suspicious, and the far right loathes them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결합하여 20세기 좌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이 되었다. 존경받는 우파는 그들을 의심하며, 극우파는 그들을 혐오한다.

 

‘Anders Behring Breivik is the perfect example of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Theodor Adorno wrote about.’ Photograph: Heiko Junge/AFP/Getty Images

‘안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는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논한 권위주의적 인성의 완벽한 사례이다.’ 사진: 하이코 융/AFP/게티 이미지스

 

When Anders Breivik launched his murderous attack in Norway in July 2011, he left behind a rambling manifesto which attacked not only what he saw as Europe’s Islamicisation but also its undermining by the cultural Marxism of the Frankfurt school. So what is the Frankfurt school? Has its influence has been as deep as Breivik feared and many of the rest of us have hoped?

2011년 7월에 아네르스 브레이비크가 노르웨이에서 살인적 공격을 감행했을 때, 그는 유럽의 이슬람화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유럽의 훼손을 공격하는 장황한 선언문을 남겼다. 그렇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란 무엇인가? 그 영향력은 브레이비크가 두려워했고 우리 대다수가 바랐던 만큼 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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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브레이비크

https://www.theguardian.com/world/anders-behring-breiv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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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will have heard of the most prominent names from that tradition: Theodor Adorno, Herbert Marcuse and Max Horkheimer, but its reach goes much further, taking in many of the 20th century’s most important continental philosophers and socio-political developments.

많은 이들이 이 전통의 가장 저명한 인물들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훨씬 더 넓어, 20세기 가장 중요한 대륙 철학자들과 사회정치적 발전의 상당 부분을 포괄한다.

 

The Frankfurt school was officially called the Institute for Social Research and was attached to the University of Frankfurt but functioned as an independent group of Marxist intellectuals who sought, under the leadership of Felix Weil, to expand Marxist thought beyond what had become a somewhat dogmatic and reductionist tradition increasingly dominated by both Stalinism and social democracy. Most famously they sought to marry up a combination of Marxist social analysis with Freudian psychoanalytical theories, searching for the roots of what made people tick in modern consumer capitalist society as well as what made people turn to fascism in the 1930s.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공식적으로 사회조사연구소로 불리며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소속되었으나, 펠릭스 바일의 지도 아래,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점점 지배하게 된 다소 독단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전통을 넘어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확장하고자 했던 독립적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 집단으로 기능했다. 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1930년대에 사람들을 파시즘으로 돌아서게 한 것의 뿌리를 찾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사회 분석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결합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The Frankfurt school went back to Marx’s early theoretical works from the 1840s and tapped into his more humanist impulses found in the German-French Annals and in his correspondence with Arnold Ruge. It is in these early writings that we find many of Marx’s most important writings on the role of religion in history and society. His ideas about the way materialism worked in the world were still being formulated and he had not yet become the economic theoretician he was later known as. It is not that Marx left ideas of religion behind after these early years, but he felt he had dealt with them properly and could move on to more tangible affairs. In a letter to Arnold Ruge in 1843 he wrote: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1840년대 마르크스의 초기 이론 저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프랑스 연보>와 아르놀트 루게와의 서신에서 발견되는 그의 더 인본주의적인 충동을 끌어냈다. 바로 이 초기 저작들에서 우리는 역사와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에 관한 마르크스의 가장 중요한 글들을 많이 발견한다. 당시 마르크스는 유물론이 세계에서 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사상을 아직 정립 중이었으며, 후에 알려진 경제 이론가로 자리매김하기 전이었다. 마르크스가 이 초기 이후 종교 사상을 완전히 뒤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종교 문제를 충분히 다루었기에 더 실질적인 문제로 넘어갈 수 있다고 여겼다. 1843년에 아르놀트 루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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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연보>

http://en.wikipedia.org/wiki/Deutsch%E2%80%93Franz%C3%B6sische_Jahrb%C3%BC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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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motto must be: reform of consciousness not through dogmas, but by analysing the mystical consciousness that is unintelligible to itself, whether it manifests itself in a religious or a political form. It will then become evident that the world has long dreamed of possessing something of which it has only to be conscious in order to possess it in reality. It will become evident that it is not a question of drawing a great mental dividing line between past and future, but of realising the thoughts of the past. Lastly, it will become evident that mankind is not beginning a new work, but is consciously carrying into effect its old work.”

“우리의 좌우명은 이러해야 합니다: 도그마들 통해서가 아닌, 종교적 형태로 표출되든 정치적 형태로 표출되든 스스로에게 이해될 수 없는 신비적 의식을 분석하는 것에 의한 의식 개혁. 그러면 세상이 현실에서 소유하려면 의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음이 자명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거대한 정신적 경계선을 긋는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사상을 실현하는 문제임이 자명해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래된 일을 의식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음도 자명해질 것입니다.”

 

But the idea that what was required was a reform of consciousness which had become unintelligible to itself is the central working principle of the Frankfurt school. Religious thought, which Marx saw as a part of false consciousness, was to be combated not by a full frontal attack in some sort of Dawkins-like crusade, but by removing the social conditions that created it. Marx was, therefore, not an atheist. Indeed he said of the term atheism that it “reminds one of children, assuring everyone who is ready to listen to them that they are not afraid of the bogey man”. But the Frankfurt school did not believe that this reform of consciousness could come about simply by changing the socio-economic base of capitalist society. Religion was, for them, not only the opium of the people, but also a repository of hope that had become unintelligible to itself.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해할 수 없게 된 의식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그 생각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핵심 연구 원리다. 마르크스가 허위 의식의 일부로 본 종교적 사고는 도킨스식 십자군 같은 전면 공격으로 맞서 싸울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성한 사회적 조건을 제거함으로써 극복되어야 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무신론이라는 용어에 대해 “마치 귀신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다짐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바꾸기만 하면 이 의식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이해할 수 없게 된 희망의 저장소이기도 했다.

 

Freud comes into the equation here because these critical theorists thought that his categories of id, superego and ego, which were constantly interacting as the basis of the human psyche, fitted well with the Marxist dialectic of historical struggle and resolution. If societies moved forward historically as the result of class struggle, then individuals were constantly dealing with a struggle between the reality of the world around them and what they thought about that world. Paradoxically, the Frankfurt school saw this as necessary because of the relative success of capitalism rather than its imminent collapse, as the more dogmatic Marxists proclaimed (and indeed continue to proclaim). How was it, they argued, that the great mass of people could be sucked into complicity with their own exploitation? With the emergence of fascism in the 1920s and 30s the question became even more urgent. What led educated people to throw their lot in with the barbarism of fascism? This, for them, was the ultimate in false consciousnes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works of the Frankfurt school to deal with this phenomenon was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a work that purported to be a study of prejudice and that documented the ways in which people, as individuals, were motivated to think and act as they do in a social context, to form in-groups and to exclude others to the point of genocidal extermination.

프로이트가 여기에 등장하는 이유는, 이 비판 이론가들이 인간 정신의 기초로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그의 이드, 슈퍼에고, 에고 범주가 역사적 투쟁과 해결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과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계급 투쟁의 결과로 역사적으로 전진한다면, 개인들은 주변 세계의 현실과 그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 사이의 투쟁을 끊임없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임박한 붕괴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성공 때문에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더 독단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했던 (그리고 여전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말이다. 그들은 이렇게 반문했다: 어떻게 대다수 대중이 자신들의 착취에 공모하는 데까지 빨려 들어갈 수 있었는가? 1920~30년대 파시즘의 출현으로 이 질문은 더욱 시급해졌다. 교육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파시즘의 야만성에 동조하게 되었는가? 이것이, 그들에게는, 허위 의식의 극치였다. 이 현상을 다룬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 중 하나는 <권위주의적 인성>이었다. 이 책은 편견에 대한 연구를 표방하며, 개인으로서의 사람들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동기부여받는지, 어떻게 내집단을 형성하고 타인을 집단학살에 이르기까지 배제하는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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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적 인성>

http://www.ajcarchives.org/main.php?GroupingId=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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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oxically it is that great enemy of the Frankfurt school, Breivik, who is the perfect example of the authoritarian personality Adorno wrote about: obsessed with the apparent decline of traditional standards, unable to cope with change, trapped in a hatred of all those not deemed part of the in-group and prepared to take action to “defend” tradition against degeneracy. More worryingly, especially set against the rise of groups like Golden Dawn in Greece and widespread trends towards the fear of Islam in mainstream society, Adorno maintained that “personality patterns that have been dismissed as ‘pathological’ because they were not in keeping with the most common manifest trends or the most dominant ideals within a society, have, on closer investigation, turned out to be but exaggerations of what was almost universal below the surface in that society. What is ‘pathological’ today may, with changing social conditions, become the dominant trend of tomorrow.”

역설적이게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적자 브레이비크야말로 아도르노가 논한 권위주의적 인성의 완벽한 사례다: 전통적 규범의 분명한 쇠퇴에 집착하고,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며, 내집단으로 간주되지 않는 모든 이들에 대한 증오에 갇혀 퇴폐로부터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같은 집단의 부상과 주류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는 추세를 고려할 때 더 우려스럽게도, 아도르노는 “사회 내에서 가장 흔한 표면적 추세나 가장 지배적인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병리적’이라고 일축되었던 인성 패턴들이,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회 아래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것들의 과장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늘날 ‘병리적’인 것이, 사회적 조건이 변하면, 내일의 지배적 추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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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새벽당

http://en.wikipedia.org/wiki/Golden_Dawn_%28Greece%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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